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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와 추천/두고 보자

제목을 거꾸로 읽고 싶은 | 성적표의 김민영

 

 

민영이가 자신에게 한 말을 생각하며 변기에 앉아 있는 정희
너가 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맞을 수도 있어

묵직한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은 이재은, 임지선 감독의 작품이에요. 제목부터 특이합니다. 익숙한 대중영화와 다른 매력을 뽐내요. 성적에 집착하는 김민영의 인간적인 면모를 윤정희의 독특한 시선으로 들춰 봅니다.

 

 

정희의 글과 말은 묵직한 울림을 줘요. 짧은 시간 멀찍이 떨어진 우정에 대해 생각합니다. 간직하고 싶은 상실에 대해 이야기해요. 또한 캐릭터의 상상력이 뛰어납니다. 매우 추천해요.

 

이건 백프로 흑역사 생성이다

성적표

제목이 독특해요. 김민영의 성적표가 아니라 성적표의 김민영입니다. '성적이 아니라 김민영이 중요하다' 이런 뜻으로 다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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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김주아)가 주로 말하지만 제목에 민영(윤아정)이가 들어가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데미안이 아닌 싱클레어가 주인공이에요. 정희의 시점과 독백으로 극을 끌고 갑니다. 정희의 세계에서 어쩌면 민영이 차지하는 부분은 컸을 거예요.

 

민영은 주관이 뚜렷하고, 행동하는 편이며, 어렸을 때 몇몇의 활약으로 주목받은 경험도 있습니다. 고무 동력 비행기로 가장 긴 시간을 날아 챔피언에 올랐어요. 자신만의 관점으로 쓴 글로 상도 탔습니다. 삼행시 클럽을 만든 장본이기도 해요.

 

가장 효용 없는 한 사람을 추방하자 회의를 했다

 

김민영의 삼행시 '김민영'은 정말 좋습니다. 담담하며 묵직한 글이 울림을 줘요. 자기 효용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아끼려는 마음도 한편에 있어요. 다짐으로 끝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대하게 합니다.

 

김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김 씨들이 모여 가장 효용 없는 한 사람을 추방하자 회의를 했다.
영아?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변호하고 싶었다.
원히 제가 이대로 살아가진 않을 거예요.

 

 

스무 살이된 민영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삼행시도 접고, 클럽 활동에 뜸하며, 꿈은 구석에 처박아 뒀어요. 두꺼운 전공책 뒤에 숨겨 뒀습니다. 사실 민영이는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현실 민영이는 중간고사 성적표에 연연합니다.

 

C를 어떻게든 바꾸려고 애써요. 장황하고 뻔한, 사회성 충만한 글을 적어내려 갑니다. 하루 종일 이메일에 매달리다가 교수님을 찾아가기로 결심해요. 겁이 잔뜩 늘었습니다.

 

민영은 알고 보면 이랬고,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객관적으로 저랬습니다. 정희는 그것 하나하나에 등급을 매겨 봐요. 점수에 집착하는 민영을 위해 성적표를 발행합니다. 책상 위에는 민영이가 말한 불가능한 경단을 올려 두고 와요. 패자에게 쓰디쓴 깨달음을 주는 맛일 것 같습니다.

 

정희가 채점한 김민영의 성적표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름

김민영의 성적표

경제력 A+ 집이 넓고 교통의 중심지
패션과 감각 A 꾸미는 데 관심이 많고 옷을 잘 입음. 겨울 멋쟁이는 얼어 죽고
여름 멋쟁이는 더워 죽는다.
사회성 B+ 처음 보는 사람과 말을 매우 잘하는 듯 보여 사회성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말이 없어짐.
인간관계 D 자신의 의사소통 방식이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모름. 자신만의 네트워크 유지를 위해 노력함.
베풂 C- 어제 너의 행동이 믿기지 않아. D를 주고 싶지만 평소 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남들에게 가끔 해 주기 때문에 베풂의 길로 나아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함.
마음과 행동 A 내가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아, 그렇구나" 하고 얘기를 들어 줌.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나를 봐 주고 있다는 느낌.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을 때가 있어.
한국인의 삶 F 너가 한국인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바쁜 일상, 좁은 땅, 인맥, 가식과 형식, 알수없는 불안기다림, 두려움, 막연한 기대, 너가 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맞을 수도 있어.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 음, 그래도 앞으로 뭘 하든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덜 절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넌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민영은 선 채로 성적표를 손에 쥐어 보고 천천히 읽은 뒤 주워온 상에 올려놓아요. 어쩌면 집착도 성적표처럼 내려놓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삼행시 클럽
창밖을 보며 감성에 젖는 출근길은 없다

글의 유정희

정희의 생각이 남달라요. 민영이처럼 개성이 넘치던 때를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진한 색이 됐어요. 누구보다도. 정희의 글과 말을 들으면 어쩐지 뭉클합니다. 내가 갖고 싶었던 상실을 돌이키게 해요.

 

람선의 정기권을 끊었다. 이걸 타고 매일 출근을 할 것이다.
답을 알 길이 없는 두려운 생각들이 물을 더럽힌다. 그것들은 이 바다의 미세 먼지다. 창밖을 보며 감성에 젖는 출근길은 없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망과 기대의 순간들이 그 길에서 외로운 정화 작업을 진행 중.

 

정희는 대구대에 입학한 민영이와 하버드에 다니고 있는 수산나(손다나)와 다르게 테니스장에 취직합니다. 학생은 아니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에요. 떡볶이집 사장님도 그러려니 하며 다른 질문을 삼갑니다. 정희는 자신을 그렇게 자신 있게 정의했어요.

 

도착하자마자 돌아가야 하는 여행을 상상하는 정희
청주항공 426편 잠시 후에 출발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이 이따금 아득히 멀게 느껴진 적 있나요. 오랜 만에 만난 가족, 친구, 선생님, 좋아했던 사람 누구든. 정희가 줌-인해 들어간 세계에 더 이상 민영과 수산나는 없습니다. 줌-아웃해 널찍이 봐도 그래요.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를 추천합니다. 혜주(이요원)는 민영이 같은 사회인이 됐어요. 지영(옥지영)이는 가난과 가족의 죽음으로 고립됐습니다. 태희(배두나)는 가까스로 우정을 이어가려 고군분투해요.

 

한 줄 평

널찍이 봐도 나는 혼자였고 반짝였다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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