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우울한
영화 애프터썬은 샬롯 웰스 감독의 작품이에요. 이야기는 사랑스러운 소녀의 일상을 즐겁게 따라가는 듯 흐릅니다. 설레는 성장통이 가득하다가 초점 없는 아빠를 종종 마주해요. 행복했던 열한 살 내가 20년 뒤에 그날의 아빠를 회상합니다.
딸은 유언처럼 남은 엽서와 비디오 테이프를 보며 되감기를 해 봐요. 딸과 아빠 마음을 따로 생각하며 두 번 보면 더 좋습니다. 서른 살이 십 대 시절을 돌아봐 설익은 분위기예요.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 많습니다. 일상을 지긋이 바라봐 없던 예쁨이 솟아나요. 매우 추천합니다.
아는 추억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생일 날 아빠(폴 메스칼) 꿈을 꿨습니다. 깨고 나서도 한참이나 멀뚱이 침대맡에 가만히 있어요. 희끄무레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빠와 갔던 터키 여행을 생각해요. 집에 남은 낡은 엽서와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도 꺼내 봅니다.
그날의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워요. 아직 젊은 사람이 어릴적을 추억하는 덜 익은 회상입니다. 6mm 캠코더처럼 마침 단종된 물건을 잠깐이나마 쓰고 최초의 기억쯤에 두고 온 느낌이에요. 사라져서 괜스레 아련합니다. 아빠도 그랬던 걸까요.
지중해는 무심하게 맑고 한가한 사람들로 붐빕니다. 시간이 많은 노인과 학생 그리고 가족. 아빠는 남은 게 없었던 걸까요. 소피가 마주하는 사소한 일상들은 여유롭습니다. 미래는 아득해서 낯선 곳, 처음 보는 얼굴, 신제품을 지긋이 바라봐요. 두근거리며 가슴이 차오릅니다.
하늘 위에 떠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관광객은 아름다워요. 소피도 아빠와 패러세일링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럴 마음이 없어요. 이미 온몸이 파랗게 우울합니다. 함께 찾은 수영장에는 여전히 뒤집혀 뜬 낙하산이 오르락내리락해요. 알록달록 숨이 막힙니다.
모르는 세계
열한 살 소피는 정말 행복했어요. 사랑하는 아빠와 인생 최고의 여행을 만끽했습니다. 웃음이 끝도 없었어요. 20년 뒤 잠에서 깬 소피는 웃지 않습니다. 그곳에 아빠가 없어요.
뻐근한 고개를 돌려 잠자리 자세를 바꾸듯 추억을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왠지 나만 기분 좋아 보이는 순간들이 의문이에요.
내가 용기 내서 무대까지 올랐는데 아빠는 왜 따라 나오지 않았을까. 생일 축하 떼창에 할 말을 잃었나. 손그늘에 가린 아빠 얼굴은 표정이 없습니다.
부러진 팔, 할퀸 어깨, 흐물거리는 몸짓, 밤에 알몸 수영. 그냥 이상했어요. 소피는 이국 음식을 먹고, 오락실에서 떨리게 부대끼고, 모르는 언니 오빠와 당구를 쳤습니다.
남자끼리 입맞춤을 얄궂게 훔쳐 보고, 사람 없는 수영장에서 좋아하는 남자 애랑 처음 키스를 했어요. 아빠는 밤에 울었지만 낮에 웃었습니다.
한 줄 평
내 설익은 추억 때문에 아빠만 희끄무레해 5.0
넷플릭스 왓챠 스트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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