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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와 추천/두고 보자

히키코모리가 세상으로 나간 이유 | 백엔의 사랑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복싱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치코
"그 주먹으로 세계를 뚫어라"

처량한

영화 백엔의 사랑은 타케 마사하루 감독의 작품이에요. 서른두 살, 무직,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딸의 좌충우돌 성장 스토리입니다. 동생과 대판 싸우고 홧김에 독립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요. 복싱 게임만 하다가 진짜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하며 프로 무대에 도전합니다.

 

 

저마다의 아픔을 갖고 있는 소시민의 삶을 다채롭고 애처롭게 그렸어요.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궁상맞은 연기의 진수를 볼 수 있어요. 음악마저 짠하고 반전이 있습니다. 매우 추천해요.

 

대뜸 데이트 신청을 하고 이치코를 데리고 나가는 카노
주유소에서 일해요? 그만뒀어

백엔짜리

이치코(안도 사쿠라)는 백엔짜리 상품을 모아 파는 편의점에서 일해요. 물건이 워낙 저렴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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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재밌었던 점은 배우를 소개하는 방법이었어요. 제목에 걸맞게 백엔짜리 제품으로 주연과 조연을 알려줬습니다. 진열된 빵, 맥주 로고 디자인에 그대로 이름을 입혔어요.

극을 따라가 보면 느끼겠지만 등장인물은 모두 처량한 모습입니다. 이치코가 말하듯이 ‘백엔짜리’ 삶을 살아요. ‘열심히 사는’의 반대편에 있는 인간군상입니다.


오카노(우노 쇼헤이)는 이치코가 근무하는 편의점장이에요. 노동 시간이 하루 18시간이나 됩니다. 손님에게 친절하고 성실한 편이에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울한 얼굴입니다. 대화하다가도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굴어요. 유체이탈을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다(오키타 유우키)는 편의점 본사 직원인데 아주 깐깐하게 굴어요. 종종 매장 관리를 위해 들르곤 합니다. 점장 오카노를 탐탁지 않게 여겨 매번 잔소리를 해대요. 일이 많아 늘 피곤에 쩔어 있고 곧 오카노처럼 우울증에 걸릴까 봐 걱정합니다.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노마(사카다 타다시)는 이치코의 편의점 동료예요.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사는데 도박으로 돈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띠동갑인 이치코에게 추근대기도 해요. 스스로 망한 인생이라 생각하며 막 삽니다. 술에 취한 이치코를 주먹으로 패고 호텔로 끌고 가 강간까지 했어요. 그 뒤로 편의점 금고를 털고 달아나 버립니다.

 

상사에게 주먹을 날리고 잘린 이치코와 일하던 편의점을 털러 온 이케우치
고마웠어. 바이, 안녕!


이케우치(네기시 토시에)도 한 때 백엔샵에서 일했는데 돈을 훔치다 걸려서 잘렸어요. 염치 불구하고 매일 밤 전 직장을 찾아와 폐기 음식을 쓸어갑니다. 폐기물은 원칙상 모두 버려야 하지만 이치코는 이케우치가 안쓰러워 내버려 둬요. 이 일 때문에 사다와 갈등을 겪습니다.

 

알고 보면 사다는 근면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에요. 집에 있는 딸 생각에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다만 일에 찌들어 말에 짜증이 가득해요. 다정함을 잃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울 형편이 안돼 차가운 행동을 자처해요.

 

분노에 가득차 복싱에 매진하는 이치코
저, 시합도 나갈 수 있나요?

헝그리 앵그리

이치코 어린 조카랑 매일 복싱 게임을 했어요. 봐주는 거 없이 156연승을 하고 조롱까지 잊지 않습니다. 가상에서는 언제나 승자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변변한 직장도 없이 부모님께 빌붙어 삽니다. 어머니가 동네에서도 평이 좋은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지만 일손을 도울 생각도 없이 폐인처럼 살아요.

밤늦게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 늘 복싱 체육관을 서성입니다. 무기력한 자신과 다르게 늘 안간힘을 쓰며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을 봐요. 또는 게임이 아니라 실제 복싱에 호기심이 생겼나 봅니다. 관원들은 리듬에 맞게 잽을 날리다가 코치 구령이 떨어지자 샌드백이 터져라 빠르게 두들겨요.

 

특히 카노(아라이 히로후미)는 이치코의 시선을 앗아간 남자입니다. 카노는 자주 가는 편의점에서 일하게 된 이치코와 계속 마주해요. 바나나를 사러 와서는 돈만 내고 안 가져가는 이상한 짓도 일삼습니다.

 

카노는 이치코가 체육관 앞을 지나며 자신을 본 걸 잘 알았습니다. 어느 정도 호감을 산 걸 간파하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요. 동물원 데이트를 하고 심심풀이로 잠도 잡니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알고 마음껏 누려요.

알고 보면 카노도 불쌍합니다. 긴 선수 생활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은퇴하게 됐어요. 마지막 경기에 이치코를 초대해 멋진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복싱도 그만두고 두부 장사를 시작해요. 취업이 안 되니까 지나가던 수레 장사를 멈추고 만만한 일을 구합니다. 새로 얻은 직장에서 예쁜 여자와 눈이 맞고 다루기 쉬웠던 이치코를 남겨두고 떠나요.

 

프로의 세계는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이치코
와 봐! 오라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치코는 화가 나서 복싱에 더욱 매진합니다. 아마도 카노를 생각하며 펀치를 날렸을 거예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합니다. 프로 테스트 합격이라는 목표를 갖고 정진해요.

이치코는 분노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지만 어쨌든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아빠랑도 웃으며 대화하고 엄마 가게 일손도 도울만큼 철이 들어요. 체중도 확 줄고 매무새도 단정합니다. 완전 딴사람이 됐어요.
 

밀리언 달러 베이비

백엔은 우리 돈으로 천 원쯤 합니다. 밀리언 달러는 10억을 훌쩍 넘는 금액이에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역시 값어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치코는 백엔샵에서 일하며 스스로 가치를 그렇게 매겼어요. 그 안에서 나름의 치열함으로 불태우고 달라지 삶을 얻어냈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의 삶도 이치코와 비슷했어요. 패배자처럼 사는 가족과 불행하게 살다가 뛰쳐나옵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복싱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겨요. 서른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세계 무대에 설만큼 성장합니다. 그렇다고 인생은 순순하지 않고 우리 마음을 눈물짓게 하기도 해요. 매우 추천합니다.
 

한 줄 평

다정함을 잃는 게 가장 불쌍한 삶 아닐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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