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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와 추천/두고 보자

공사가 다 망 | 비스티 보이즈

 

샤워하다 멍하니 거울을 보는 승우
혼자 사는데 왜 이렇게 칫솔이 많아

윤종빈

영화 비스티 보이즈는 수리남을 만든 윤종빈 감독의 작품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호스트 바 세계를 구체적으로 그렸어요. 꾸밈없이 찍은 느낌입니다. 거기 살고 있는 사람만 쓰는 말을 대사에 입혔습니다. 전문 용어는 흔히 아는 뜻과 다르게 쓰여 재밌어요.

 

 

감독이 한 달 동안 웨이터로 생활하며 현장 취재를 했다고 합니다. 하정우는 언제나처럼 능청스럽고 윤계상은 덜 익었지만 신선한 연기를 펼쳐요. 할 수 있는 만큼 솔직히 담아내서 더 매력 있습니다. 추천해요.

 

손님에게 호스트를 소개하는 재현
올란도 블룸 그런데 조금 태국식

은어

현실성은 윤 감독의 특징입니다. 가장 큰 몫을 하는 건 은어입니다. 특정 집단에서만 사용하는 말이 진실해 극의 몰입도를 높여요. '박스'의 피디(PD)인 재현(하정우)은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에게 '호스트'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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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는 호스트 무리를 뜻해요. 피디는 호스트와 손님을 연결해 주는 파트너 디렉터라고 합니다. 테이블은 손님을 접대하러 다닌다는 뜻이에요.

 

호스트에게 돈을 나눠주는 재현
그래 우리 지훈이 빠이팅 더 해 형도 빠이팅 더 할 테니까

 

호스트는 일하는 바로부터 미리 돈을 받아 생활해요. 자신을 치장하거나 살 곳을 마련하는 데 씁니다. 이런 돈을 '마이킹'이라고 불러요.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하지만 군대에서 쓰는 말처럼 정확히 유래를 알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티씨(TC)라는 말도 자주 써요. 테이블 차지(Table Charge)는 손님이 지불한 돈을 뜻합니다. 매주 재현이 승우(윤계상)와 다른 호스트에게 티씨를 '몇 장'씩 나눠줘요.

 

재현은 '공사'에 공을 들입니다. 여자를 속여 큰돈을 뜯어내는 일을 뜻해요. 잘해주며 호감을 삽니다. 연락을 자주 하고 데이트 상대도 하며 신뢰를 얻어요. 그러다가 집안일이 생겼다거나, 갑자기 큰 빚을 졌다는 둥 불쌍한 연기를 합니다. 섣불리 돈을 빌려달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게 유도해요. '네가 한 말이니 지켜라'라는 식입니다.

 

공사를 치고 있는 재현
미선아 오빠 어저께 한별이랑 정리했다

 

어린 나이에 돈이 생겨 쉽게 써요. 비싼 밥, 술, 차, 명품, 월세로 줄줄 셉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도 많아요. 남자 박스는 주말이면 스포츠 배팅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제 나름대로 해외축구를 분석해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착각해요.

 

승우가 만나는 지원(윤진서)도 호스트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많이 번다고 해요. 여자 호스트는 일을 마치고 남자 호스트 바를 찾습니다. 일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어요. 접대하는 사람에서 받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돈을 지불하는 만큼 대우받아요. 이것저것 마음대로 시킵니다. 당해서 돌려줘요. 서로 같은 일을 해서 힘든 점에 공감하지만, 손님처럼 똑같이 무시하는 아이러니도 있습니다.

 

손님에게 술을 따르는 승우
뺀찌 안 놓을 거 아니까 이러죠

공허

술 마시고 노래하며 놀고 돈도 벌지만 삶이 텅 빈 기분이에요. 웃는 얼굴로 손님을 택시에 태워 보내면 공허함이 밀려옵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사는 건가 싶다'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돈 대신 꿈에 대한 말을 꺼냅니다. '나 이런 거 말고 제대로 된 사업 하나 할 거야', '장사하려고 가게 알아보고 있어'

 

모두 불안합니다. 뭔가 잘못 된 것만 같아요. 돈은 제 때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씀씀이는 커져서 나갈 데가 늘어가요. 빚을 지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다음 주면 들어오니까', '내가 경마장 가서 2배로 따서 이자 쳐서 갚을게' 같은 말이 오갔을 거예요. 빚처럼 거짓말도 늡니다. '내일 줄게', '다음 달에 꼭 갚을게'.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먹으러 가는 승우와 지원
남자가 그 일해서 벌어 봐야 얼마나 벌겠어

악순환

더럽고, 치사하고, 구차하고, 비참한 삶을 멈출 수 없어요. 무시 대신 사랑을 받고 싶은데 의지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또 나쁜 사람에게 돌아가요. 아는 게 걔뿐이고 더 나은 놈을 만날 보장도 없습니다. 또 속아서 상처받기 싫어요. 아마도 공허는 거짓말로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의심하고 집착하다가 주먹질을 해요. 재현, 승우, 지원, 한별 모두 그렇습니다.

 

지원이가 딴 남자 만나는 것 같습니다. 쇼핑몰을 한다며 호스트 생활을 접었어요. 대신 마이킹을 내 주는데 나한테 더 소홀하기만 합니다. 전화도 잘 안 받아요. 나를 무시하고 짜증을 냅니다. 승우는 '지원이가 나한테 공사를 치나' 확인하고 싶어요.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승우는 그렇게 칼을 들어요.

 

생각에 잠겨 담배를 피는 승우
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페르소나

하정우는 윤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릴 만큼 함께한 시간이 깁니다. 두 사람이 연을 시작한 '용서받지 못한 자'도 추천해요. 비스티 보이즈처럼 은밀한 군생활을 제대로 표현했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윤 감독과 만나 생생함이 더해졌어요. 하정우는 능청이 경지에 올라 능구렁이가 됐습니다.

 

윤계상은 아이돌 가수였고 이제는 배우예요. 변영주 감독의 '발레 교습소'로 데뷔했습니다. 풋풋한 연기와 사랑이 보여요. '6년째 연애중'에서는 공감 가는 현실 연애를 연기했습니다. '소수의견'부터 무게감이 생겨요. 돈 없고 백 없는 국선 변호사 배역을 맡아 국가를 상대로 100원 소송을 진행합니다.

 

한 줄 평

공사가 다 망했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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