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하고 귀엽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입니다. 여러 사람이 죽는 살벌한 사랑 이야기예요. 주인공 둘은 아주 독특한 생각에 따라 결정을 내려 충격적입니다. 촬영과 미술이 좋아 영상미가 뛰어나요. 스마트폰에도 시점을 만들어 스크린을 바라보는 인물의 감정을 담아냈습니다.
감독이 정한 감정선과 의미 부여에 따라 나타나는 상징과 색이 정교하게 설계 돼 있어요. 자동 번역으로 벌어지는 대화가 오묘하게 귀엽고, 품위 있게 다가옵니다. 아이러니예요. 매우 추천합니다.
사랑에 빠진
서래(탕웨이)는 남편을 죽였습니다. 서래는 오랫동안 중국에 살다 한국에 처음 들어왔어요. 할아버지는 독립 유공자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비행기 대신 불법 어선으로 밀입국했어요. 자신을 붙잡아 적발한 공문원 기도수와 결혼했습니다. 덕분에 형사 해준(박해일)을 만나요.
해준은 품위 있는 형사입니다. 성적이 우수했어요. 최연소 수식어를 달고 삽니다. 용의자라고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아요. 이성적으로 규칙을 따릅니다. 맛과 멋을 알고 성실함과 실용의 미덕을 보이는 사람이에요. 그러던 그가 용의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서래는 사실 친어머니도 죽였어요. 사연이 고통스러운 이별을 했습니다. 다시는 같은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아 헤어져도 괜찮은 만남만 이어갔어요. 그랬더니 하루하루가 폭력이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 살인을 선택했어요. 서래가 알고 있는 단일한 이별 방법입니다.
해준은 품위의 대가를 치르고 있어요. 불면증입니다. 무엇이든 꽂꽂하고 바로 서 있어 몸을 풀어헤치지 못해요. 온몸에 무기를 들어 무장해재가 필요합니다. 어쩐지 서래만 만나면 잠을 푹 자요. 취조를 하거나 잠복하며 서래를 지켜본 날은 어김없이 숙면에 취합니다. 그렇게 붕괴 됐어요. 무너지고 깨어져 용의자를 풀어주고 결정적인 증거를 못 본 척합니다.
오묘한 번역
헤어질 결심은 익숙한 말을 낯설게 바꿨어요. 알고도 안 쓰는 단어를 꺼내 들었습니다. 고상한 책에서나 볼 법한 ‘마침내’, ‘단일한’ 같은 말을 서래의 입을 빌려 발화했어요. 해준은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귀여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달리 보면 고급스러워 서래를 사랑하기 시작해요.
해준은 서래를 더 이해하고 싶어 번역기를 자주 사용합니다. 서래는 중국어로 마음을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어요. 서래도 해준을 사랑합니다. 서래는 길고양이에게 남몰래 고백의 말을 속삭여요. 해준은 녹음해 번역하고 마음을 심장으로 해석해 살인자의 살기를 재밌게 느껴봅니다.
스마트폰의 눈
스마트폰에 눈이 있다면 우리가 가장 많이 눈을 맞추는 존재일 거예요. 박찬욱 감독은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직접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보여줬습니다. 더 이상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사진사를 기다리지 않아요. 직접 스마트폰으로 빨리 찍습니다. 스마트 워치를 찬손목만 살짝 들고 녹취도 딸 수 있어요.
손가락을 여러 번 탭 하기보다 말로 명령을 내립니다. 서래가 요양하는 할머니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 시리를 찾아요. 해준은 손이 느려 서래가 열 마디 할 때 겨우 ‘네’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마무리와 다른 작품 추천
박찬욱 감독은 배운 변태라는 별명에 걸맞은 작품을 여러 편 만들었어요. 치밀한 구성과 치명적인 캐릭터, 보는 순간 호르몬을 분비시키는 미장센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은 복잡하지만 착실히 얽혀 재미가 커지는 스토리예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아름다움은 숨을 멎게 하고 머리에 피가 돌게 합니다.
한 줄 평
단 번에 입술이 보드랍게 돌아갔다 5.0
넷플릭스 왓챠 스트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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