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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와 추천/두고 보자

우리는 왜 정약용 형을 왜 몰랐을까? | 자산어보

 

바다 생물을 헤쳐 보며 관찰하는 정약전
창대야~ 혹시나 했는데 역시 너로구나

다채로운 흑백

이준익 감독의 역사극이라면 믿고 봅니다. 흑백으로 제작했다면 개봉날을 손꼽아 기다릴 거예요. 영화 자산어보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합니다. 재미와 의미를 같이 느낄 수 있어요. 강력히 추천합니다.

 

 

사실 색 없는 영화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아요. 한물 간 인상이 있습니다. 다만 포스터부터 다른 작품과 달라 오히려 눈에 띄어요. 컬러풀 사이에서 블랙 앤 화이트가 색달라 보입니다.

 

유배길에 이별하는 정약용과 정약전
형님은 웃는구려

삼형제

정약용(류승룡)은 형이 셋 있어요. 정약현, 정약전(설경구), 정약종(최원영)입니다. 자산어보는 둘째 형 정약전이 쓴 책이에요. 자산은 흑산도를 뜻하고 어보는 물고기를 연구한 책입니다. 유학 서적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나오기 힘든 실용 서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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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용의 형 약전은 조선을 너무 앞섰습니다. 서양을 배척하던 시기에 서양 문물과 종교를 받아들였어요. 사대부에게 눈엣가시가 됐습니다. 죽이지 못해 살려두는 형제였어요. 그래서 흑산도로 유배를 떠났습니다. 조정에서 생각하는 '가능한 멀리 보내야 할 사람'은 약용이 아니라 사상이 위험한 약전이었어요.

 

 

'무엇이 중요한가요?' 영화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약전이 생각하길 보통 사람의 믿음은 점점 굳어가며 철학, 신념, 고집, 아집이 되지 않나 합니다. 의심이 내 마음을 엽니다. 틀림을 알아차리고 다시 확인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사상은 흑과 백을 가릅니다. 종교는 정교와 이단을 나누네요. 실학은 좋고 나쁨을 깨달아 더 나은 선택을 합니다. 오늘 옳은 게 내일 그를 수 있어요.

 

정약전에게 학문을 배우는 창대
어찌 그리 술술 읽으십니까?

창대

흑산에는 창대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호기심이 넘쳐 무엇이든 관찰해 특징을 외워요. 책은 없어서 못 읽습니다. 뭍에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한사코 부탁해 해진 거라도 얻어내요. 그런데 스승이 없습니다.

약전은 창대에 대해 듣습니다. 바닷가에서 똘똘한 놈을 보고 딱 창대다 싶어 말을 걸었어요. 창대도 약전을 압니다. 서양 문물과 천주교에 빠진 '사학쟁이'라 들었어요. 첫인상이 엇갈렸습니다.

둘은 거래를 텄어요. 약전의 제안입니다. 창대 놈 자존심을 지켜주는 따뜻한 배려였어요. 창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합니다. 약용의 제자와 시 겨루기도 해요. 시는 영화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정약전을 흠모하는 가거댁
겨도 육지 사람이라 훤~ 하네


창대는 단번에 과거 시험을 치르고 양반인 아버지 덕에 벼슬도 얻었어요. 창대는 목민심서를 탐독하고 백성을 위해 일하는 목민관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타락한 탐관오리를 모두 처단하겠다고 이를 갈아요. 결단은 곧 무너집니다. 세상이 썩어 문드러져 홀로 돌이킬 수 없어요. 결국 섬으로 돌아갑니다.

 

그 사이 약전은 혼인을 하고 자식도 낳습니다. 몸이 야위어 가면서도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어요. 기침으로 각혈하며 쓰고 또 씁니다. 창대 이야기도 오롯이 담았어요.


"섬 안에 창대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책이 많지 않은 탓에 식견을 넓히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신실하고 정밀하여 물고기와 해초, 바다새 등을 모두 세밀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터득하고 있어 그의 말은 믿을만하였다."

 

진지한 얼굴로 글을 쓰는 정약용
나홀로 웃는다

각각 약전과 약용의 제자 장창대와 이강회의 즉흥시 대결은 사실 정약용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목은 '나 홀로 웃는다'라는 뜻의 '독소'예요. 두 구씩 번갈아 읊는데 모두 아이러니입니다.

독소

양식이 있으면 먹을 사람 없고
자식이 많으면 굶주릴까 걱정.

높은 벼슬아치는 필시 어리석고
재주 있는 사람은 베풀 기회 없네.

완벽한 복이란 집안에 드물고
지극한 도는 언제나 무너지네.

부모가 검소하면 자식이 방탕하고
아내가 영리하면 남편이 멍청하네.

달이 차면 구름이 자주 끼고
꽃이 피면 바람이 훼방 놓지.

세상일 모두가 이러하니
남몰래 혼자서 웃는다네.

이준익

이준익 감독은 시대를 재밌게 씁니다. 황산벌부터 동주까지 모두 역사가 됐네요. 2016년 아리랑 씨네센터에 가서 개봉작 '동주'를 봤습니다. 겨울이었어요. 집까지 걸어가며 찬 바람으로 뜨거운 속을 달랬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목격했어요. 준비가 덜 된 감상이 못 튀어나오게 막았습니다. 자산어보도 동주와 같아요. 색이 없지만 화려했습니다. 천만 영화 '왕의 남자'도 추천해요. 자산어보와 통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탐관오리와 부패한 정권 그리고 도전과 남은 삶이랄까요.

한 줄 평

진리에서 과학으로, 누군가로부터 모두에게로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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